농촌 초기진입 이주노동자의 온열질환
그 기록의 전문
SK행복나눔재단의 문제정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팀 헷사과. 원래는 경북 의성의 농산물 유통구조를 연구하고 있었다. 사과와 마늘의 고장, 의성. 그러다 한겨레21의 르포 기사를 읽고 방향을 바꿨다.
2024년 여름, 한겨레21은 「폭염에 쓰러지는 이주노동자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수박밭 지표면 온도 44도. 그 안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사에는 네팔 출신 40대 남성이 폭염 속 작업 중 사망한 사건, 베트남 출신 후앙 리엔의 사례 등 한국 농촌의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다 온열질환으로 쓰러지거나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주노동자의 고통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짧게 다뤄질 뿐, 그전까지는 철저히 소외돼 있었다. 폭염은 해마다 더 심해지고 있다.
팀은 직접 현장을 체험하기로 했다. 한여름 의성 점곡면을 1시간 동안 걸었다. 그늘 하나 없는 농촌 도로였다. 짧은 체험이었지만 극한 온도와 습도를 그대로 겪었고, 이 환경에서 하루 8시간 이상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실감했다.
체험 이후 팀 회의에서 팀원들은 각자의 감상과 의문을 나눴다. 온열질환 뒤에는 날씨 말고도 여러 조건이 겹쳐 있었다. 언어 장벽, 고용 불안정, 의료 접근성의 부재. 팀은 이 조건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문제정의' 단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팀 헷사과가 조사하면서 가장 놀란 점은 이 문제가 이미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알려져 있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매년 폭염 시즌마다 온열질환 뉴스가 나오지만,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온열질환은 통계에서도, 정책에서도, 사회적 관심에서도 빠져 있었다. 팀은 여기에 '다중적 사각지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네 가지로 나눠 분석했다.
제도는 농업을 아직 '가족 단위 자영업'으로 취급한다. 실제로는 고용노동이 광범위하지만,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영역이 많다.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를 위한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라인은 사실상 없고, 고용허가제 사전교육의 기후 안전교육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친다.
단기계약, 불법체류. 80%가 미등록 상태다. 의료와 산재보상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사업장 변경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쉬겠다고 말하기 어렵다. '아프다'는 말을 꺼낼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일한다.
야외 노지 작업, 그늘 없음. 비닐하우스 내부 온도는 외기보다 10~15도 이상 높고, 습도 80% 이상에서 땀 증발이 차단된다. 작업을 중단할 권한이 없고, WBGT 기준 작업 중단 기준이 현장에서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온열질환 교육 자료, 안전교육 매뉴얼, 증상 자가 진단 도구가 한국어로만 제공된다.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출신 노동자들이 증상을 인지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가로막혀 있다. 언어 장벽이 생명과 직결된다.
이 네 겹의 사각지대는 서로 맞물려 있다. 통계가 없으니 정책이 안 만들어지고, 정책이 없으니 현장이 바뀌지 않고, 현장이 안 바뀌니 사람들이 계속 쓰러진다. 쓰러진 사람은 다시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팀은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가장 현장에 가까운 지점, 초기진입 이주노동자의 신체 반응에서부터 접근하기로 했다.
한국의 여름 기온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특히 경북 의성군은 연간 폭염일수 22.4일로 전국 1위를 기록한다. 비닐하우스 내부 온도는 외기 온도보다 10~15도 이상 높아, 한여름에는 50도를 넘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습도 역시 80% 이상으로, 인체의 자연 냉각 기능인 땀 증발이 사실상 차단되는 환경이다.
* 농촌진흥청 및 현장 측정 자료 기반. 비닐하우스 종류, 환기 시설, 작물에 따라 편차 존재.
농촌 지역은 도시 열섬효과와는 다른 방식으로 극한 고온에 노출된다. 비닐하우스 내부뿐 아니라, 사과밭, 마늘밭 같은 노지 작업 환경도 한여름에는 체감온도가 40도를 넘긴다. 그늘이 없고, 바람이 없으며, 작업을 중단할 권한이 노동자에게 없다. WBGT(습구흑구온도지수) 기준 작업 중단 기준이 존재하지만, 현장에서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 농촌의 인력 구조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농가 경영주의 평균 연령은 65세 이상이며, 젊은 노동력의 유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 공백을 이주노동자들이 메우고 있다.
의성 지역 농가의 64.3%가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중 80%는 미등록 상태다. 행정이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마을의 농업을 떠받치고 있었다.
이들은 주로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출신으로, 한국의 기후와 노동 환경에 대한 사전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농촌 현장에 투입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도시통근형 노동이다. 이주노동자들은 도시 외곽의 숙소에서 농촌 작업장으로 매일 통근한다. 마을에 살며 농장으로 출퇴근하는 동선이라 지역 커뮤니티와 접점이 적고, 비상 상황에서 즉시 도움을 받기 어렵다.
팀 헷사과는 현장 조사에서 이주노동자 31명을 직접 만났다. 그중 13명, 42%가 온열질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전체 근로자 평균의 몇 배에 달하는 수치다.
칸 하나가 현장에서 만난 이주노동자 한 명이다. 31명 중 13명(약 42%)이 온열질환을 겪었다.
팀이 발견한 가장 중요한 패턴은 '초기진입'이라는 변수였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노동자, 즉 고온다습한 농업 환경에 아직 순화(acclimatization)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온열질환 위험이 현저히 높았다.
초기진입자의 심부체온 38.62°C. 온열질환 경계선이다. 열순화에는 보통 7~14일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몸은 땀 분비량 증가, 심박수 조절, 체온 조절 기능 향상 같은 변화를 거치며 고온 환경에 적응한다. 그러나 초기진입 노동자들에게는 이 적응 기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온열질환의 발생과정은 점진적이다. 처음에는 두통, 어지러움, 메스꺼움 같은 경미한 증상으로 시작하지만, 적절한 조치 없이 작업을 계속하면 열탈진(heat exhaustion)으로 진행되고, 최악의 경우 열사병(heat stroke)으로 이어져 의식을 잃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문제는 초기 증상 단계에서 노동자 스스로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려도 작업을 중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초기진입 노동자의 첫 여름에는 적응할 시간도, 정보도, 보호 장치도 없다.
폭염 위험을 현장에서는 어떻게 느끼고 대처하고 있었을까. 농부, 인력업체, 노동자, 지자체. 같은 밭을 두고도 시선이 제각각이었다.
이주노동자는 고용허가제(E-9), 계절근로(C-4·E-8), 관광비자(C-3) 등 서로 다른 경로로 농촌에 들어온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합법과 불법의 구분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사업장을 이탈한 E-9 인력, 기한을 넘긴 관광비자 인력이 한 밭에서 섞여 일한다.
출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합법으로 시작해도 무단 이탈·기한 초과로 '미등록' 풀이 고착됐다.
관광비자(C-3)는 취업 자체가 불법이라 산업안전보건 교육과 연결될 여지가 없다. 고용허가제(E-9)는 입국 전 45시간, 입국 직후 2박 3일 교육이 의무지만, 현장에서는 다르게 굴러갔다.
63%온열질환 관련 안내를 받지 못한 비율
"말이 잘 안 통하니 작업 방법만 10분 보여주면 끝, 안전 교육은 따로 없습니다." (의성군 옥산면 김정미 사과농부)
현장에서라도 교육하면 되지만, 농촌에는 그마저 막는 세 가지 장벽이 있었다.
그날 어떤 국적의 노동자가 올지 알 수 없어, 맞춤 교육을 설계할 수 없다.
수확기에 교육을 위해 작업을 멈추는 건 곧장 비용이 된다.
통역할 사람이 없어 "더우면 쉬라"는 말조차 전할 수 없다.
온열질환은 '준비 없는 더위'에서 생긴다. 팀 헷사과는 현장 조사와 인터뷰, 문헌 분석을 종합해, 초기진입 이주노동자의 온열질환이 세 단계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주노동자들은 출국 전 한국의 기후 특성, 특히 여름철 농업 현장의 극한 환경에 대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다. 고용허가제의 사전교육은 노동법, 기본 한국어 등에 집중되어 있으며, 작업장 안전교육 중 온열질환 예방 내용은 형식적이거나 아예 없다. 입국 후에도 열순화를 위한 점진적 작업량 조절 없이 바로 전일 노동에 투입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닐하우스 내부에는 온도·습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장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WBGT 기준 작업 중단 기준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노동자 스스로 증상을 인지하더라도, 다국어 증상 체크리스트나 응급 대응 매뉴얼이 없어 적시 대응이 어렵다. 작업 중 정기적 휴식과 수분 보충도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온열질환이 발생하더라도 체계적인 응급 대응 프로토콜이 없다. 농촌 지역 의료 접근성 문제와 언어 장벽으로 인해, 증상이 심각해져도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발생 건수가 산재로 보고되는 비율도 극히 낮아, 통계적 사각지대가 재생산된다. 이는 다시 사전 단계의 정책 수립을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 문제의 핵심은 '더위에 대한 준비와 대응의 부재'에 있었다. 같은 온도에서 일하더라도, 사전에 열순화 프로그램을 거치고, 현장에서 적절한 모니터링과 휴식이 보장되며, 증상 발생 시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있다면, 온열질환 발생률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팀은 이 세 단계 중 가장 빨리 개입할 수 있는 '현장 단계'에 집중해 솔루션을 설계하기로 했다.
같은 야외 노동인데, 건설업은 법으로 막고 농업은 권고에 머문다. 농가는 작물 생육주기와 날씨에 묶여 폭염에도 작업을 강행하고, 5인 미만 영세농가는 그마저도 적용에서 빠진다.
팀 헷사과가 설계한 솔루션은 '안심키트(Safety Kit)'다. 이름에는 '안심(安心)'의 두 가지 뜻을 담았다. 몸의 안전(安)과 마음의 편안함(心). 모르는 채로 일터에 나서지 않도록, 물리적 보호 장비와 정보 접근을 결합한 통합 키트다.
휴대용 팬 내장
체감온도 3~4°C 저감
냉각 소재
경부 냉각
자외선 차단
직사광선 방호
다국어 가이드
시각적 증상 체크
캄보디아어, 베트남어, 태국어, 미얀마어, 한국어, 네팔어, 인도네시아어, 중국어, 우즈베크어, 영어 등 10개 언어로 제작된 시각적 증상 체크카드. 글을 모르더라도 그림과 색상 코드만으로 자신의 상태를 판단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녹색(안전) → 노란색(주의) → 빨간색(위험)의 단계별 대응 행동이 명시되어 있으며, 방수 처리되어 작업 중에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다.
팀은 안심키트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협력 농가에서 소규모 파일럿 실험을 진행했다. 안심키트를 사용한 그룹과 사용하지 않은 그룹의 온열질환 관련 지표를 비교했다.
* 파일럿 실험은 소규모(N=24)로 진행되었으며, 통계적 일반화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방향성 확인에는 유의미한 결과로 판단된다.
팀 헷사과의 프로젝트는 2025년 11월을 기점으로 1차 사이클을 마무리했다. 다만 이 문제는 한 팀이 한 학기 안에 해결할 수 있는 크기를 넘어선다. 팀은 결과물과 한계를 솔직하게 정리하고, 다음 단계의 방향을 제시한다.
팀은 이 프로젝트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첫째, 파일럿 실험의 규모가 소규모(N=24)로, 통계적 일반화에 한계가 있다. 둘째, 안심키트는 '현장 단계'에 집중한 솔루션으로, 사전 단계(정책·제도)와 사후 단계(의료·기록)의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이다. 셋째, 프로젝트 기간이 한 학기로 한정되어, 장기적 효과 추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한계는 그대로 다음 연구와 실천의 과제이기도 하다. 소규모였기 때문에 정교한 파일럿이 가능했고, 현장에 집중했기 때문에 실행 가능한 솔루션이 나왔고, 기간이 한정됐기 때문에 문제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농촌 초기진입 이주노동자의 온열질환은 '준비 없는 노출'에서 생기는 문제다. 통계적·언어적·의료적·관계적 사각지대가 중첩되어, 매년 같은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온열질환 발생은 '초기진입 3개월'에 집중된다. 열순화 부재 + 언어 장벽 + 관계적 제약이 겹쳐, 가장 취약한 시기에 보호를 가장 적게 받는다.
안심키트(다국어 체크카드 + 쿨링 아이템 + 응급 연락 시스템)를 통해 현장 단계에 직접 개입. 파일럿 결과: 증상 자가 인지율 31% → 78%, 자발적 휴식 2.4배 증가.
저비용·고효과 모델로 타 농업 지역 확산 가능. 지자체·농협 연계 배포 채널 활용. 고용허가제 사전교육 과정 포함 제안. 디지털 모니터링으로의 확장 가능성.
농촌의 비닐하우스 안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오늘도 일하고 있다. 처음 온 노동자의 몸은 아직 이 더위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다. 우리는 아직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 팀 헷사과가 만든 안심키트는 그 첫 여름을 위한 작은 시작이다.
다음 여름이 오기 전에 할 일이 남아 있다. 키트 확대 배포, 열순화 매뉴얼 개발, 정책 제안서 제출. 처음 온 노동자가 '알 방법이 없는' 첫 여름을 맨몸으로 맞지 않게 하는 일이다.
볕 아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 여름을 준비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