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Lab Report
탐사 르포

실버카가 사라지는 75분

전국 고령화율 1위, 의성. 어르신 87명을 만난 대학생 팀이 기록한 것은 보행보조기 없이 보내는 75분의 공백이었다.

2025년 11월 읽기 약 12분 경북 의성
의성군 버스 정류장 한쪽에 주인 없이 줄지어 세워진 실버카들. 어르신들은 이미 버스에 올라탄 뒤다.
의성군 한 정류장에 세워진 실버카들. 어르신들이 버스를 타면서 두고 간 것이다. 의구심 팀 촬영

경북 의성군 오일장이 열리는 날 아침, 버스 정류장에는 실버카가 줄지어 서 있다. 주인은 없다. 실버카를 끌고 나온 어르신들은 이미 버스에 올라탄 뒤다. 접이식 프레임, 네 개의 바퀴, 짐을 넣는 바구니, 접으면 의자가 되는 좌석. 그것들이 정류장 구석에 나란히 세워져,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의성군은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고령화율 49.2%로 1위다. 주민 둘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이라는 뜻이다. 소멸위험지수는 0.11. 행정안전부 기준으로 소멸 고위험지역 1위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서 실버카는 특별한 물건이 아니다. 지팡이만으로는 걸을 수 없는 어르신들이, 두 손으로 잡고 의지하는 생존 도구다.

"이거 없으면 나는 못 다녀. 다리가 후들후들해가 지팡이로는 안 되고, 이거 잡아야 걸을 수 있어."

금성면 초전2리에 사는 정자 할머니(80대)

SK행복나눔재단 프로그램에 참여한 대학생 팀(의구심)은 2025년 여름, 의성군 어르신들의 이동 실태를 조사했다. 정자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7월이었다. 할머니는 집에서 정류장까지, 정류장에서 읍내 시장까지, 시장에서 병원까지 — 모든 이동에 실버카를 끌고 다녔다. 그런데 조사팀이 목격한 것은, 정류장에 도착한 어르신들이 실버카를 두고 버스에 오르는 장면이었다.

II
SECTION 02

실버카라는 생존 도구

조사팀이 의성군에서 만난 어르신 87명 가운데 51명(58.6%)이 실버카를 사용하고 있었다. 과반이 넘는다. 농가인구의 65세 이상 비율이 56.0%, 70세 이상이 40%에 달하는 지역에서, 실버카는 걷기 위한 지지대이자 장을 볼 때 짐을 나르는 운반 수단이자 지치면 펴서 앉는 의자다. 세 가지 기능이 하나의 기구에 들어 있다.

실버카 vs 지팡이 — 기능 비교

기능 실버카 지팡이
보행 지지 양손 지지 — 안정적 한 손 지지 — 흔들림
짐 운반 바구니에 장본 짐 적재 불가
휴식(앉기) 좌석을 펼쳐 앉아 쉼 불가
넘어짐 방지 4륜 프레임 지지 제한적

"지팡이는 한 손이고 흔들려. 이거는 양손으로 잡으니까 안 넘어져. 장 볼 때 짐도 여기 넣고."

조사에 참여한 어르신
밝은 배경 위에 놓인 실버카 사진. 접이식 프레임에 네 개의 바퀴, 좌석, 짐 바구니가 보인다.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실버카(보행보조차). 접이식 프레임에 바퀴, 좌석, 바구니가 갖춰져 있다. 의구심 팀 촬영

"다리가 아파서 오래 못 걸어. 그라면 이거 펴가 앉아서 좀 쉬다 가고. 지팡이는 그게 안 되잖아."

조사에 참여한 어르신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르면, 실버카는 '성인용보행기'로 분류된다. 장기요양 재가수급자(1~6등급)에게 복지용구 급여로 지원되며, 연 한도액은 160만 원, 내구연한은 5년이다. 그러나 보행보조차의 법적 분류는 '보행 보조'에 그친다. 이 기구가 실제로 어르신의 일상에서 수행하는 세 가지 역할 — 지지, 운반, 휴식 — 은 어떤 실태조사 항목에도 반영되지 않는다.

III
SECTION 03

75분의 공백

조사팀은 정자 할머니의 외출 하루를 동행 관찰했다. 결과는 단순했다. 집에서 정류장까지는 실버카를 끌고 간다. 정류장에서 버스에 오를 때, 실버카를 정류장에 두고 탄다. 버스 안에서 실버카 없이 이동한다. 읍내에 도착한 뒤에도 실버카가 없다. 시장을 돌고, 병원에 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까지 — 약 75분 동안 실버카 없이 걸어야 한다.

정자 할머니의 외출 — 실버카 동반 여부

집 → 정류장
도보
실버카 O
버스 탑승
~25분
실버카 X
읍내 활동
시장·병원
실버카 X
버스 탑승
~25분
실버카 X
정류장 → 집
도보
실버카 O

실버카 없는 구간: 약 75분

조사 결과, 실버카 사용자 51명 가운데 46명(90.2%)이 버스에 실버카를 가져가지 못하고 있었다. 10명 중 9명이 실버카가 가장 필요한 순간 — 짐을 나르고, 낯선 곳에서 걷고, 지쳐서 쉬어야 할 때 — 에 실버카 없이 보내고 있었다.

"버스에 이걸 어떻게 가지고 타노. 계단도 높고, 접어도 무겁고. 그냥 여기 세워놓고 타는 기라."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어르신
의성 오일장 장날, 짐을 들고 버스에 탑승하려는 어르신들이 줄 서 있다. 버스 앞이 붐빈다.
장날, 버스에 탑승하려는 어르신들. 실버카를 끌고 나온 분들이 적지 않지만 버스에 가지고 탈 수는 없다. 의구심 팀 촬영

"시장에서는 벽을 짚고 다녀. 없으면 다리가 후들거려가 오래 못 서 있어."

금성면 초전2리, 정자 할머니(80대)
실버카 공백구간 75분 타임라인을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집에서 정류장까지는 실버카 동반, 버스 탑승 후 읍내 활동 전 구간에서 실버카 없음.
조사팀이 정리한 실버카 공백구간 타임라인. 버스에 오르는 순간부터 돌아와 되찾을 때까지 약 75분간 실버카 없이 이동해야 한다. 의구심 팀 제작
IV
SECTION 04

왜 버스에 실버카를 태울 수 없는가

이유는 구조적이다. 농어촌 버스의 계단은 높다. 통로는 좁다. 짐칸은 없다. 실버카를 접어도 7~10kg에 달하는 금속 프레임을, 높은 계단을 밟고 올라가 좁은 통로 사이로 밀어 넣을 수 없다. 허리가 굽고 무릎이 아픈 어르신이 한 손으로 실버카를 들고, 다른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계단을 오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성 시내버스. 입구에 높은 계단 3단이 보인다. 손잡이는 천장 가까이에 설치되어 있다.
의성을 다니는 버스. 입구 계단이 높고 통로가 좁다. 키 150cm 안팎인 어르신이 천장 손잡이를 잡기 어렵다. 의구심 팀 촬영

저상버스라면 다를까. 바닥이 낮아 계단 없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는 휠체어와 유모차는 물론, 실버카를 가지고 승차하는 것도 구조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2024년 기준, 농어촌버스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9.2%에 불과하다. 같은 해 시내버스 보급률 44.4%의 약 5분의 1이다.

저상버스 보급률 비교 (2024)

출처: 국토교통부, 정책브리핑 / 시사위크

서울 시내버스
70%+
70%+
시내버스 전국
44.4%
44.4%
도 지역 평균
19.8%
19.8%
농어촌버스
9.2%

격차는 가격에서 비롯된다. 저상버스 1대 가격은 약 2억 2,000만 원. 일반버스(약 1억 1,000만 원)의 2배다. 국가와 지자체가 가격 차이(9,000만 원)를 반반씩 보조하지만, 농어촌 운수업체의 재정 여건상 전환은 느리다. 2023년 1월부터 시내, 마을, 농어촌 모든 버스의 대폐차 시 저상버스 의무 도입이 시행되었으나, 제4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이 세운 2026년 목표치 — 농어촌버스 저상버스 42% — 와 현실(9.2%) 사이의 간극은 크다.

한편, 면 지역의 평균 버스 배차간격은 88.5분이다. 농어가 가구의 경우 98.4분에 달한다. 전국 읍면 1,408곳 중 310곳(22.0%)은 하루 3회 이상 버스가 오지 않는, 최소 서비스 미달 지역이다. 버스가 저상으로 바뀌더라도 한 시간 반에 한 대뿐인 이 버스를, 실버카를 접어 들고 기다려야 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V
SECTION 05

보이지 않는 숫자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르면, 교통약자는 장애인, 고령자(65세 이상),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어린이 등을 포함한다. 2024년 기준 교통약자는 1,613만 명, 전체 인구의 31.5%다. 전년 대비 26만 4천 명 늘었다. 늘어난 대부분은 고령자다.

교통약자법 제25조에 따라,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가 매년 실시된다. 이 조사는 점자블록 설치율, 휠체어 승강설비 유무, 장애인 화장실 설치 여부 등 이동편의시설의 기준적합 설치율을 측정한다. 2024년 기준 교통수단 분야 적합률은 76.5%, 여객시설 74.0%, 도로(보행환경)는 65.9%로 가장 낮다.

그런데 이 조사 항목 어디에도 '실버카 사용자가 버스에 실버카를 가지고 탈 수 있는가'는 없다. '보행보조기를 가지고 정류장까지 걸어갈 수 있는가', '보행보조기를 들고 버스에 승차할 수 있는가', '목적지에서 보행보조기 없이 걸을 수 있는가' — 이런 항목은 측정 체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시설이 있느냐 없느냐를 재는 척도로는, 시설을 실제로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

의구심 팀이 작성한 버스 승하차 관찰 데이터 및 조사 지역 지도. 의성군 내 정류장별 실버카 미동반 비율이 표시되어 있다.
조사팀이 의성군 내 정류장에서 기록한 버스 승하차 관찰 데이터. 의구심 팀 제작
1,613만
교통약자 규모
(전체 인구의 31.5%)
한국교통안전공단, 2024
15.4%
외출 시 불편 사항
'버스 타고 내리기'
보건복지부, 2023 노인실태조사
58.0%
읍면부 대중교통
이용률
보건복지부, 2023 노인실태조사
7년
고령사회 → 초고령사회
한국 소요 기간
통계청 (일본 10년, 독일 36년)

보건복지부의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가 외출 시 불편하다고 응답한 항목 중 '버스, 전철 타고 내리기'는 15.4%, '계단이나 경사로 오르내리기'는 17.4%, '교통수단 부족'은 9.1%였다. 읍면부의 대중교통 이용률은 58.0%로, 동부(71.6%)보다 13.6%포인트 낮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읍면부 고령자의 자가용(가족 운전 포함) 이용률은 37.5%로 동부(24.9%)보다 높다.

의성에서 87명을 만난 조사팀의 데이터는 이 수치들 사이에서 빠진 한 칸을 보여준다. 실버카 사용자 51명 중 46명이 버스에 실버카를 가져가지 못한다는 사실은, 기존 교통약자 실태조사에서는 포착되지 않는다. 이동편의시설 기준적합 설치율 79.3%라는 숫자에는, 실버카를 정류장에 두고 맨몸으로 버스에 오르는 어르신의 경험이 포함되지 않는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가 측정하는 것: 점자블록 설치율, 휠체어 승강설비 유무, 장애인 화장실 설치 여부.
측정하지 않는 것: 실버카 사용자가 보행보조기를 가지고 버스에 탈 수 있는지 여부.

VI
SECTION 06

정류장에 남은 실버카

장이 끝나면 어르신들은 읍내에서 다시 버스를 탄다. 정류장에 내리면 아침에 세워두고 간 실버카가 그 자리에 있다. 할머니들은 실버카를 다시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내일도, 다음 장날에도 이 풍경은 반복된다.

해질녘 정류장에 세워진 실버카 한 대.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장이 끝난 뒤, 정류장에 남겨진 실버카. 의구심 팀 촬영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1,084만 명. 전체 인구의 21.21%다. 2024년 12월, 한국은 65세 이상 비율이 20%를 넘기며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까지 7년. 일본(10년), 독일(36년)보다 빨랐다. 통계청은 2035년이면 전체 인구의 30.9%가 65세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농촌의 고령화는 그보다 훨씬 빠르다.

의성 버스 정류장에는 오늘도 실버카가 줄지어 서 있다.

의구심 팀원들과 정자 할머니가 함께 마을길을 걷고 있다.
의성군 마을길. 실버카를 끌고 가는 어르신과 동행하는 조사팀. 의구심 팀 촬영